관계 가이드
트라우마 본딩: 학대하는 관계를 떠나기 어려운 이유와 안전하게 벗어나는 법
트라우마 본딩은 학대와 다정함이 번갈아 오는 관계에서 상대에게 강한 애착이 생긴다는 설명이지만, 진단명이 아니고 연구도 적어요. 떠나지 못하는 데는 두려움, 아이, 돈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크고, 2025년 조사에서 이혼·별거·동거 종료를 겪은 사람의 50.0%가 이별 전후에 폭력을 겪었어요. 떠날 때는 1366 같은 전문 기관과 안전 계획을 세우세요.
학대와 다정함이 번갈아 오는 관계를 떠나기 어려운 이유를 연구와 공식 자료로 정리했어요. 트라우마 본딩이라는 말의 근거와 한계, 통제의 신호, 이별 전후의 위험, 안전 계획과 도움받을 곳까지 담았어요.
트라우마 본딩이란: 진단명이 아닌 ‘설명’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은 학대하는 사람과 학대받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감정적인 애착을 가리키는 말이에요(Casassa 등, 2022). 많은 사람이 학대하는 상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풀이하는 설명 가운데 하나로 쓰여요(Shaughnessy 등, 2023). 이 말의 출발점으로 널리 인용되는 것은 1981년 Dutton과 Painter의 이론으로, 되풀이되는 학대의 패턴 속에서 피해자의 연애 감정이 생긴다고 봤어요(Lesiak & Gelsthorpe, 2026).
다만 트라우마 본딩은 진단 기준이 있는 진단명이 아니에요. 연구에서 쓰는 설문 척도가 몇 가지 있을 뿐이고(Graham 등, 1995; Chenneville 등, 2024), 비슷하게 쓰이는 ‘스톡홀름 증후군’도 학대한 사람에게 강한 애착이 생긴다는 ‘가설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 왔어요(Bailey 등, 2023). 그래서 이 글은 트라우마 본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기보다, 학대하는 관계를 떠나기 어려운 이유와 안전하게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와 공식 자료로 정리해요.
학대는 때리는 것만이 아니에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친밀한 파트너 폭력을 현재나 이전의 파트너가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통제하는 행동도 여기에 넣어요(WHO, 2026).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도 학대의 형태는 여러 가지지만 언제나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해요(NHS, 2026). 한국의 2024년 조사에서는 19세 이상 여성 7,027명 가운데 19.2%가 친밀한 파트너에게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이나 통제를 평생 한 번 이상 겪었다고 답했어요(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5).
연구가 보여 주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
1993년에 이 이론을 시험한 연구는 학대 관계를 막 떠난 여성 75명(그중 50명은 신체 폭력을 겪음)을 떠난 직후와 6개월 뒤에 면담과 설문으로 조사했어요. 간헐적인 학대가 심하고 두 사람의 힘의 차이가 클수록 전 상대에게 느끼는 애착이 강했고, 학대의 총량·간헐성·힘의 차이가 6개월 뒤 애착 점수 차이의 55%를 설명했어요. 그래도 애착은 6개월 사이 약 27% 줄었어요(Dutton & Painter, 1993). 다만 이는 이미 떠난 여성 한 집단에서 본 상관관계라서, 간헐적인 학대가 애착을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아요.
그 뒤의 연구도 많지 않아요. 1995년에는 이성 교제 중인 여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용 설문 척도가 만들어졌고(Graham 등, 1995), 새 척도는 미국의 젊은 성인에게서 검증된 뒤 케냐의 18~29세 538명에게서도 검증됐어요(Chenneville 등, 2024). 연구진도 검증된 측정 도구가 적고 문화권에 따른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해요(Chenneville 등, 2025). 현재 학대 관계에 있는 354명을 조사한 2023년 연구는 스스로를 위험 요인의 복잡한 모형을 살핀 첫 연구라고 밝혔는데, 어린 시절 학대 경험과 불안정 애착이 있을수록 트라우마 본딩 점수가 높았고, 이 점수는 PTSD 증상과 함께 높았어요(Shaughnessy 등, 2023).
결과가 엇갈리기도 해요. 나이지리아의 지원 기관 두 곳을 찾은 여성 345명 조사에서는 상대에게 당한 학대의 정도가 트라우마 본딩 점수와 뚜렷한 관련이 없었고,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점수가 높았어요(Effiong 등, 2022). ‘학대가 애착을 만든다’는 이론의 핵심과 맞지 않는 결과예요. 성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에 관한 글 15편을 모은 고찰은 이런 유대를 끊고 건강한 애착으로 바꾸는 방법을 보여 준 글이 하나도 없었다고 정리했어요(Casassa 등, 2022). 그러니 ‘트라우마 본딩 끊는 법’으로 검증된 방법은 아직 없고, 이 글의 뒷부분은 안전과 지원, 치료에 관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요.
영국에서 학대가 되풀이된 관계를 겪은 여성 18명을 면담한 연구는 가해자가 길들이고,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잔인하게 굴다가 다정하게 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감정적인 얽매임을 의도적으로 만든다고 보고, 지금까지의 설명이 가해자의 역할을 작게 봐서 피해자 탓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어요. 다만 이 연구는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오직 사랑 때문에 관계에 남았다고 답한 여성만 골라 면담했어요(Lesiak & Gelsthorpe, 2026). 정리하면 트라우마 본딩 연구는 대부분 작고 한 시점에 이뤄졌고, 간헐적인 학대가 애착을 만든다는 가설에는 지지하는 결과와 맞지 않는 결과가 함께 있어요.
스톡홀름 증후군·공동의존·불안형 애착과 무엇이 다를까
‘스톡홀름 증후군’은 일부 납치 피해자가 납치범에게 갖게 되는 긍정적인 유대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이 주제의 체계적 문헌고찰이 찾은 논문은 12편뿐이었고 대부분 사례 보고였으며, 검증된 진단 기준은 없었고 국제 질병 분류 체계 어디에도 진단으로 실려 있지 않았어요(Namnyak 등, 2008). 최근에는 이를 ‘달래기(appeasement)’라는 생존 전략으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도 나왔어요(Bailey 등, 2023).
‘공동의존(codependency)’은 여러 관계의 어려움에 폭넓게 붙는 논쟁적인 개념이에요. 연구 30편을 모은 고찰은 공동의존이 정서적 고통, 흔들리는 정체성, 관계의 어려움과 꾸준히 관련됐지만 공식 진단 기준이 없고 개념도 모호하다고 정리했어요(Molina 등, 2026).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나를 잃는 패턴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다뤄요. ‘연애 중독’도 정의가 합의되지 않은 말이고, 연구 27편 가운데 15편(3,628명)을 모은 메타분석에서 불안형 애착과 함께 나타나는 경향(상관계수 0.39)이 있었지만 학대를 다루는 개념은 아니에요(Cavalli 등, 2025).
불안형 애착도 트라우마 본딩과 같은 말이 아니에요. 연구 34편을 모은 메타분석에서 애착 불안과 애착 회피는 둘 다 파트너 폭력의 피해와 관련이 있었고(Stefania 등, 2023), 연구 33편을 모은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불안형·회피형·혼란형 애착이 신체적 폭력의 피해뿐 아니라 가해와도 관련이 있었으며, 안정 애착은 둘 다와 반대 방향으로 관련됐어요(Spencer 등, 2021). 대부분 한 시점의 연구라서 학대를 겪은 뒤에 애착이 불안해졌을 수도 있어요. 애착유형은 학대를 당하는 이유가 아니에요.
다툼과 폭력도 다른 것이에요. 프랑스 정부는 부부 싸움에서는 두 관점이 대등하게 맞서고 협상할 수 있지만, 폭력에서는 가해자가 지배 관계를 만들고 피해자에 대한 권력을 쥔다고 설명하고, 상대의 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책임이 없으며 책임은 가해자에게만 있다고 강조해요(프랑스 정부, n.d.). 내 기억과 판단을 흔드는 말이 되풀이된다면 가스라이팅 가이드도 함께 보세요.
떠나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폭력적인 상대를 왜 떠나지 않느냐는 질문은 흔해요. 2025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전한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가 폭력적인 배우자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41.2%에서 43.8%로 늘었어요(뉴시스, 2026). 하지만 연구와 공식 자료가 가리키는 이유는 대부분 현실적인 것이에요.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은 학대가 힘과 통제의 문제라고 설명하면서, 떠나면 생길 일에 대한 두려움, 상대에 대한 경제적 의존, 상대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이유로 들어요. 학대를 겪는 것과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있다고도 해요(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2025a).
일본 정부도 ‘도망치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두려움, ‘언젠가 변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상대의 수입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사정, 아이의 안전과 학교 문제를 이유로 들어요(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n.d.a). 2023년 일본 정부 조사에서 배우자에게 피해를 겪은 462명 가운데 40.9%는 헤어지고 싶었지만 헤어지지 않았어요. 이 189명이 꼽은 이유는 아이 때문(71.4%), 경제적 불안(46.0%) 순으로 많았고, 남성에게서는 아이 다음으로 ‘상대가 변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24.1%)가 많았어요(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2024).
남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방법일 때도 있어요. 영국 정부 지침은 떠나면 자신이나 아이, 가족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믿을 때 피해자가 위험을 관리하려고 관계에 남기도 한다고 설명해요(영국 내무부, 2023). 한 쉼터의 입소 면담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경제적 대안이 부족하고 결혼처럼 관계에 들인 것이 많을수록 관계를 이어 가려는 마음이 컸고, 이 마음이 쉼터를 나오자마자 상대에게 돌아간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뚜렷이 갈랐어요(Rusbult & Martz, 1995). 폭력적인 상대를 떠난 이스라엘 여성 258명 조사에서는 스스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고 느끼는 정도를 따로 설명한 것은 소득, 그리고 상대의 감정과 필요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정도뿐이었어요(Lahav, 2023).
떠나는 일은 한 번의 결정이라기보다 과정에 가까워요. 연구를 정리한 고찰은 학대를 겪는 여성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학대에 대한 생각이 여러 번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Anderson & Saunders, 2003). 흔히 ‘평균 7번 떠났다 돌아간다’고들 하는데, 이 말을 싣고 있는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페이지도 근거 연구를 밝히지 않고(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2025b), 이 글을 쓰며 찾아본 연구 가운데 이 숫자를 보고한 것은 없었어요.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이유도 개인 안에만 있지 않아요. 미국 연구 29편을 모은 고찰은 도움을 몰라서, 닿기 어려워서, 털어놓은 뒤 생길 일이 두려워서, 돈과 자원이 없어서, 개인적인 이유로, 제도가 제대로 돕지 못해서라는 6가지 장벽을 찾았어요. 연구진은 특히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 이주민과 난민, 장애가 있는 사람, 남성, 성소수자가 서비스에 더 쉽게 닿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Robinson 등, 2021).
통제는 이렇게 나타나요
통제는 한 번의 사건보다 패턴으로 나타나요. 영국 정부 지침은 하루 일과를 감시하며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보고하게 하는 것, 입을 옷이나 먹을 것, 잘 곳, 만날 사람, 일할 곳을 정해 주는 것, 가족·친구·동료에게서 떼어 놓고 메시지나 전화를 가로채는 것을 예로 들어요.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거나 검사하고, 계정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고, 기기의 위치 추적을 쓰는 것처럼 디지털 기기로 감시하는 것도 포함돼요(영국 내무부, 2023).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친밀한 관계나 가족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통제·강압 행동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두 번 이상 일으키거나, 일상에 큰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불안과 괴로움을 일으키면 범죄예요(영국 의회, 2015).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스스로 물어볼 질문을 제시해요. 상대가 나를 가족과 친구에게서 떼어 놓는지, 돈을 통제하거나 먹을 것 같은 필수품을 살 돈을 주지 않는지, SNS를 감시하거나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퍼뜨리거나 위치 추적기로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지, 상대가 무엇을 할지 두려워 내 행동을 바꾼 적이 있는지예요(NHS, 2026). 한국 조사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친밀한 파트너에게서 정서적 폭력을 겪은 여성의 비율(1.8%)이 신체적 폭력(0.9%)의 2배였어요(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5). 2023년 일본 정부 조사에서는 배우자에게 피해를 겪은 462명의 12.6%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여성은 15.6%, 남성은 7.5%였어요(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2024).
협박도 통제의 한 방식이에요. 영국 정부 지침은 특히 상대가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을 통제 방법으로 들고(영국 내무부, 2023), 프랑스 정부도 ‘내가 떠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를 폭력의 예로 들어요(프랑스 정부, n.d.). 그런 말을 들으면 무섭고 죄책감이 들 수 있지만, 상대의 행동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에요. 상대가 지금 위험해 보이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112나 119에 알리세요. 나 자신이 너무 힘들거나 사라지고 싶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24시간·무료)에 연락하세요.
특히 조심해야 할 신호도 있어요. 연구 17편을 모은 메타분석은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살해의 가장 강한 위험 요인으로 가해자가 총기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것, 이전에 목을 조른 적, 피해자를 성폭행한 적, 무기로 위협한 적이 있는 것, 통제하는 행동, 해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 것을 꼽았어요(Spencer & Stith, 2020). 이런 신호가 있다면 상황을 혼자 판단하지 말고 경찰이나 전문 기관과 함께 안전 계획을 세우세요. 이 목록은 상대를 진단하는 도구가 아니에요. 일본 정부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에게 정해진 유형이 없고, 나이·학력·직업·연 수입과도 관계가 없다고 해요(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n.d.a).
헤어질 때가 더 위험할 수 있어요: 안전하게 벗어나는 법
헤어지는 시기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영국 정부 지침은 이별 뒤 시기에 아이를 포함한 피해자에게 폭력 위험이 높다고 하고,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가정폭력과 관련된 사망 사건을 검토한 자료에서 친밀한 파트너 사건의 19%는 사건 전에 관계가 막 끝났거나 끝내겠다는 말이 나온 상태였다고 해요(영국 내무부, 2023). 한국의 2025년 가정폭력 실태조사(19세 이상 9,077명)에서는 이혼·별거·동거 종료를 겪은 541명의 50.0%(여성 59.6%, 남성 40.0%)가 이별 전후에 폭력을 겪었어요(성평등가족부, 2026; 뉴시스, 2026). 성평등가족부는 이를 평생 피해 경험률 14.4%의 3배가 넘는다고 밝혔지만, 두 비율은 기준이 되는 집단이 달라서 헤어지면 위험이 3배가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미국 11개 도시 연구에서도 상대와 헤어진 것, 특히 통제하는 상대와 헤어진 것이 학대 관계에 있던 여성이 살해될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었어요(Campbell 등, 2003).
그래서 떠날 계획은 혼자보다 전문 기관과 함께 세우는 것이 좋아요.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은 상담원이 24시간 전화나 채팅으로 상황을 함께 살피고 각자에게 맞는 안전 계획을 세운다고 안내해요(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n.d.).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떠날 생각이라면 누구에게 말할지 조심하고, 학대하는 사람이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NHS, 2026). 인터넷 사용은 감시될 수 있고 기록을 완전히 지우기 어려워요(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n.d.). 일반적인 조언으로는 신분증·통장·중요 서류와 기록의 사본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두고, 위급할 때 갈 곳과 연락할 사람을 정해 두고, 상대가 위험할 수 있을 때는 혼자 맞서지 않는 방법이 있어요.
학대가 있는 관계라면 상대와 함께 받는 커플 상담도 맞지 않아요.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은 학대는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며 학대하는 상대와 함께 상담받기를 권하지 않고, 상담으로는 학대 관계의 불평등한 힘의 구조를 고칠 수 없다고 해요(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2022). 이별 뒤에도 통제와 강압은 이어지거나 오히려 심해질 수 있어서(영국 내무부, 2023), 연락을 끊는 것만으로 안전해진다고 볼 수는 없어요. 아이나 재판 때문에 연락이 이어진다면 법적 보호 방법을 전문 기관과 함께 알아보세요.
막 떠난 뒤에는 오히려 더 힘들 수 있어요. 연구를 정리한 고찰은 학대 관계에서 막 나온 일부 여성이 아직 그 안에 있는 여성보다 심리적으로 더 힘들어 보이는 역설적인 결과를, 스트레스가 이어지는 과정으로 설명해요(Anderson & Saunders, 2003). 그 힘듦이 떠난 결정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에요. 위급하면 바로 112, 가정폭력·교제폭력 상담은 여성긴급전화 1366(24시간)에 연락하세요.
도움받을 곳과 회복
한국에서는 여성긴급전화 1366이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을 겪은 피해자라면 남성과 여성 누구에게나 365일 24시간 초기 상담과 긴급 구조·보호를 지원해요. 국번 없이 1366으로 전화하거나 카카오톡 채널 ‘women1366’, 사이버상담 누리집으로 연결할 수 있어요. 2024년 1366이 지원한 폭력 피해 상담은 29만 3천여 건이었고, 그중 교제폭력 상담은 11,338건이었으며, 남성 상담은 전체의 6.3%였어요(여성가족부, 2025). 가정폭력 상담소와 보호시설, 무료 법률 지원도 있고(성평등가족부, n.d.a), 해바라기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에게도 365일 24시간 상담·의료·법률·심리치료 지원을 한곳에서 제공해요(성평등가족부, n.d.b).
다른 나라에도 상담 창구가 있어요. 일본에서는 ‘DV 상담 내비’(#8008)로 걸면 가까운 배우자폭력상담지원센터로 연결되는데, 일반 통화료가 들고 각 기관의 상담 시간에만 받아요(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n.d.b). 24시간 전화를 받는 ‘DV 상담+’(0120-279-889)도 있고 남성 상담도 받아요(일본 내각부, n.d.). 영국의 전국 가정폭력 상담전화(0808 2000 247)는 무료로 비밀을 지키며 24시간 받고(Refuge, n.d.), 프랑스의 3919는 익명·무료로 24시간 운영하지만 긴급 신고 번호는 아니에요(Service Public, 2026). 미국에는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1-800-799-7233)이 있어요.
주변 사람이 도울 때는 관계를 끝내라고 다그치기보다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좋아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관계를 끝내거나 집을 나오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 그건 그 사람이 결정할 일이라고 해요(NHS, 2026). 미국 가정폭력 핫라인도 어떤 상황이든 피해자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지받고 삶의 통제권을 되찾을 힘을 얻어야 한다고 해요(미국 가정폭력 핫라인, 2025a). 남성도 피해를 겪어요.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 조사에서 16세 이상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가정폭력을 겪은 비율은 여성 9.1%, 남성 6.5%로 추정됐어요(ONS, 2025).
회복을 돕는 방법도 있어요. 친밀한 파트너 폭력을 겪은 여성을 위한 심리치료 실험 33편(5,517명)을 모은 코크란 고찰에서 심리치료는 우울을 조금 줄였을 가능성이 높았고(실험 4편, 600명, 효과 크기 0.24, 중간 수준의 확실성), 불안은 줄였을 수도 있지만(실험 4편, 158명, 낮은 확실성), PTSD 증상이나 다시 폭력을 겪는 것에 차이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어요. 연구진은 심리치료가 정서적 건강에는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안전과 지원에 대한 필요까지 채우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했어요(Hameed 등, 2020). 치료는 안전 계획과 지원을 대신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에요.
친밀한 파트너 폭력은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불안장애, 수면 문제, 알코올 사용 장애, 자살 시도로 이어질 수 있어요(WHO, 2026). 장기 추적 연구 16편(36,163명)을 모은 고찰에서도 여성은 폭력을 겪은 뒤 우울 증상이 새로 생기는 관련이 뚜렷했고, 반대로 우울 증상이 있던 사람이 나중에 폭력을 겪는 관련도 있었으며, 폭력은 새로 생긴 자살 시도와도 관련이 있었어요(Devries 등, 2013). 악몽이나 플래시백, 늘 긴장한 상태가 이어진다면 트라우마·PTSD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24시간·무료)에, 지금 바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112(경찰)나 119(구급)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못 떠나는 건 의지가 약해서인가요? A. 아니에요. 떠나지 못하는 데는 두려움, 아이, 돈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크고(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n.d.a, 2024), 남는 것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일 때도 있어요(영국 내무부, 2023). 폭력의 책임은 그 행동을 한 사람에게만 있어요(프랑스 정부, n.d.).
Q. 트라우마 본딩은 진단명인가요? 테스트로 알 수 있나요? A. 진단 기준이 있는 진단명이 아니고, 연구에서 쓰는 설문 척도가 있을 뿐이에요(Graham 등, 1995; Chenneville 등, 2024). mind.io의 애착유형 테스트는 관계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방식을 살피는 검사이고, 트라우마 본딩이나 학대를 판정하지 않아요.
Q. 사랑하면 결국 변하지 않을까요? A. 폭력 뒤에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프랑스 정부가 폭력의 예로 드는 모습이기도 해요(프랑스 정부, n.d.). 가해자 프로그램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분노 조절 방법에 정리했어요. 상대가 변하기를 위험 속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Q. 헤어지면 바로 안전해지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이별 전후는 폭력 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시기예요(영국 내무부, 2023; 성평등가족부, 2026). 떠날 계획은 1366 같은 전문 기관과 함께 세우세요.
Q. 때리지 않으면 학대가 아닌가요? A. 아니에요. 가족과 친구에게서 떼어 놓기, 돈 통제, 감시, 협박도 학대예요(NHS, 2026).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어도 되풀이되는 통제가 범죄이고(영국 의회, 2015), 한국 조사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정서적 폭력이 신체적 폭력의 2배였어요(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5).
Q. 헤어지자고 하면 죽겠다고 해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사라지고 싶어요. A. 혼자 견디지 마세요. 지금 바로 자살예방상담전화 109(24시간·무료)에 연락하세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24시간)에서도 이야기를 들어 줘요. 상대나 내가 지금 바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112(경찰)나 119(구급)에 연락하고, 가정폭력·교제폭력 상담은 여성긴급전화 1366(24시간)에서 받을 수 있어요.
참고 문헌: Casassa, K., Knight, L., & Mengo, C. (2022), Trauma bonding perspectives from service providers and survivors of sex trafficking: A scoping review, Trauma, Violence, & Abuse, 23(3), 969-984, https://doi.org/10.1177/1524838020985542; Shaughnessy, E. V., Simons, R. M., Simons, J. S., & Freeman, H. (2023), Risk factors for traumatic bonding and associations with PTSD symptoms: A moderated mediation, Child Abuse & Neglect, 144, 106390, https://doi.org/10.1016/j.chiabu.2023.106390; Lesiak, M., & Gelsthorpe, L. (2026), The invisible abuser: Attachment, victimization, and perpetrator perception in repeat abuse, Violence Against Women, 32(11), 4195-4214, https://doi.org/10.1177/10778012251379423; Graham, D. L. R., Rawlings, E. I., Ihms, K., Latimer, D., Foliano, J., Thompson, A.,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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